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소련의 병력 증원 === 궁지에 몰린 카르말은 소련에게 반란 진압을 위해 "중앙아시아의 소련인들은 아프간인들과 생김새가 유사하니 이들을 투입해 달라."며 소련군에게 요청하고, 소련은 이미 정권교체를 위해 8만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니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아프간 전국의 대규모 반란으로 아프간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결국은 친소정권이 전복될 것을 우려하여 2만명을 추가로 증파하고 전투에도 전면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력개입은 무려 10년을 끌면서 막대한 군사비 부담으로 소련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SDI]] 계획으로 촉발된 미국과의 군비경쟁, [[아르메니아 대지진]]과 함께 소련 붕괴의 직접적인 4대 요인으로 꼽힌다.[[http://www.newyearfood.kr/board/newyearfood_pic_09/14054|#]]] 당시 집권 세력들은 소련으로부터 자주적인 독립국 지위를 얻으려 했지만, 사실 강제적인 독재정치와 국민들의 실정을 무시하는 경향 덕에 자국에서도 욕 먹는 상황이었다. 대내적으론 수천년 역사 동안 수많은 세력들이 거쳐가면서 이 지역은 철저하게 각 부족별로 움직이고 있을 뿐, [[바라크자이 왕조]]가 국내의 혼란을 수습하고 대강 통일국가로서의 아프가니스탄을 이룩한 것은 1930년대였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의 아프가니스탄 국민'이란 인식이 희박하였다. 아니, 애초부터 이 지역에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가까운 국가란 인식은 없었다고 봐도 된다. 국토의 80%가 돌무더기 뿐인 가파른 산악의 연속이고[* 풀숲이 우거진 [[한국]]의 산악지형과는 많이 다르다.], 나머지는 [[사막]]과 황무지가 대부분. 여기서 어떻게 사람이 사나 싶은 동네인데, 선진 문물 도입을 시도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무지하고 먹고 살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는 산골 사람들에게 갑자기 기계화된 공장과 대도시를 이야기하는 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역시 20여년 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비슷한 짓]]을 더 [[이라크 전쟁|큰 스케일]]로 하게 된다. 그러다가 경제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말아먹은 점]]도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